Conrad-Johnson | [리뷰] 콘라드존슨 프리앰프 ET5, 파워앰프 LP125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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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 콘라드 존슨
가청 주파수 대역 전체를 정확한 위상 아래 온전히 재생할 수 있는 스피커는 현재 매우 많다. 그러나 정전형 스피커처럼 실제 콘서트 홀에서 듣는 소리와 근사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는 많지 않다. 커다란 알루미늄 덩어리를 통으로 잘라 만들고 초호화 유닛을 투입해도 쉽지 않은 것이 현장음의 재현이다. 물론 현장음과 재생음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옳지만 조금이라도 더 현장의 일체감과 현장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업적이 될 것이다.
당초 녹음된 음원을 통해 가장 현장감 넘치게 재생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스피커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정전형 스피커였다. 특히 쿼드(Quad)가 만든 최초의 정전형 스피커 ‘ESL-57’은 20년 이상 생산되며 녹음 재생에 혁신을 일으켰다. 우리는 현재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정전형 스피커를 사용했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지만 실제로 당시에 스레숄드 모노블럭과 함께 정전형 스피커를 듣는 것만으로 무척 신선했다. 그러나 그 운용은 쉽지 않았다. 고역에서 때로는 1옴까지 임피던스가 하강하는 등 매우 급격한 임피던스 낙폭에 시달려야했다. 당시로서는 앰프에 엄청난 정전용량을 요구하는 까다롭지만 보석 같은 존재가 쿼드 ESL였다. 작은 병풍 같은 정전형 스피커에 거함 스레숄드가 필요했던 이유다.
▲ 쿼드(Quad)의 정전형 스피커 ESL 57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ESL63’이 정전형 스피커의 신기원을 이루며 전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로 등극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쿼드를 앰프 제조사로 기억하지만 사실 쿼드가 가장 혁신적인 공로를 세운 부분은 스피커 분야였다. 쿼드는 계속해서 ESL-988, ESL-989 등 혁신적인 모델을 개발했고 이후 2905 등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네 자리수 모델명의 쿼드가 그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혁신적인 음악 재생 장치를 고안했으나 매우 까다로운 구동 조건 덕분에 전세계 오디오파일을 실의에 빠지게 했던 스피커 ESL 시리즈. 이를 위해 때로 리뷰어들은 브라이스턴 모노블럭 파워앰프, 스레숄드 또는 크렐 FPB 시리즈와 마크 레빈슨 등 당시 하이엔드 대출력 앰프를 대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 유독 실제 유저들 사이에서 ESL에 자주 사용했던 앰프가 콘라드 존슨(Conrad Johnson)이었다. 급격한 임피던스 변동폭과 웬만해서는 터지지 않는 저역이 콘라드 존슨의 MV-50, MV-60 같은 중출력 앰프에서 자연스럽고 맛깔나게 구동되었기 때문이다.
1977년 ‘PV1’을 시작으로 진공관 앰프 제작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콘라드 존슨. 오디오 리서치(Audio Research)나 BAT 등 신흥 하이브리드 진공관 앰프 메이커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였던 시대 한복판에 콘라드 존슨도 함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기존에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것들, 요컨대 진공관을 사용하면서 광대역에 입체적이며 매우 커다랗고 정교한 음장 능력을 과시하던 때 콘래드 존슨은 단지 음질 하나로 승부하던 메이커였다. 그 주인공은 윌리엄 콘라드 박사와 루이스 존슨 박사였고 그들은 친구이자 진지한 오디오파일이었다.
과거 프리미어 11 같은 파워앰프 및 MV 시리즈 파워앰프 그리고 PV 시리즈 프리앰프로 기억하는 콘라드 존슨은 선이 굵으며 핵이 깊고 매우 탄력적인 소리로 기억된다. 왜소하거나 희미한 면이 없이 남성적인 기골이 돋보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저역 펀치력과 탁월한 구동력 등도 콘라드 존슨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일 것이다.
▲ 윌리엄 콘라드 박사(Dr. William Conrad)와 루이스 존슨 박사(Dr. Lewis Johnson)
영광의 부활, ET5 & LP1250 sa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콘라드 존슨의 ET5 프리앰프와 LP125sa 스테레오 파워앰프는 당시 모습을 기억하게 만드는 몇 가지 메타언어 중 다수를 다시 소환하게 만들었다. 우선 약간 어두운 톤의 금빛 케이스웍은 멀리서 보아도 콘라드 존슨임을 알게 해주는 선명한 증표다.
오랫동안 소규모 라인업을 유지하면서 모델을 남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회로를 업그레이드해 온 결과 보편타당한 뛰어난 음질과 안정적인 작동을 보장한다. 게다가 거대 자본에 흡수되는 등의 고초를 겪지 않을수록 최초의 순수한 철학이 변질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콘라드 존슨이 바로 그런 케이스로 프리앰프 ET5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 변치 않는 순수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6922 진공관 1개를 사용하는 ET5는 그러나, 증폭단에서 출력단에 이르기까지 설계는 매우 고전적이며 세밀하다.
▲ 콘라드 존슨 프리앰프 ET5
증폭단은 싱글엔디드 트라이오드 증폭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프리앰프의 출력단에는 고전류 MOSFET 버퍼단을 마련해놓았다. 모두 음질적으로 전통적이며 음질 중시형 설계가 돋보인다. 프리앰프의 작동에 사용되는 DC는 콘라드 존슨 고유의 디스크리트 타입 전압 레귤레이터가 담당하며 전원부와 증폭단 등은 철저히 절연되어 있는 모습이다.
프리앰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콘트롤 부분은 모두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의해 작동되어 매우 정교하고 정확한 작동을 보장한다. 볼륨은 고정밀 저 노이즈 메탈 포일 저항을 사용해 총 100스텝으로 조정되며 리모컨으로도 조절이 가능하다. 이 외에 사용한 소자 또한 최상위 프리앰프 GAT에 사용된 테프론 커패시터 외에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티렌 커패시터 등을 사용하는 등 플래그십 GAT에 버금가는 과감한 물량투입이 이루어진 모습이다. 게다가 홈시어터 시스템과의 연동을 위해 홈시어터 모드까지 지원하는 등 음질과 기능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 ET5 전면 패널
▲ ET5 내부
▲ ET5 후면 단자
함께 매칭한 파워앰프는 콘라드 존슨의 LP125sa 스테레오 진공관 파워앰프다. 상위로 LP260m 이라는 거함 모노블럭 앰프가 존재하지만 LP125sa 만으로도 웬만한 스피커는 구동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그 설계가 충실하다. 채널당 125W 출력을 갖는 LP125sa는 최상위 ART 파워앰프의 동생뻘 되는 제품이지만 여느 메이커의 최상위급 기종과 맞먹을 정도의 성능을 가진다. 우선 파워앰프에 입력된 신호는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싱글엔디드 트라이오드 증폭을 거친다.
이후 증폭된 신호는 캐소드 커플드, 위상 반전 회로를 거치는데 이 고전류 위상 반전 스테이지는 매우 낮은 임피던스로 출력단을 구동한다. 출력단에는 최근 증폭단에 많이 사용하는 KT120 진공관을 채용하였으며, LP125sa의 경우 채널당 4개, 총 8개의 KT120 관을 장착하고 있다. 출력단 자체는 트라이오드가 아닌 UL 모드로 작동하여 디스토션이 낮은 상태에서 가장 높은 출력을 구현하고 있다. 진공관 앰프의 심장 중 하나인 출력 트랜스포머는 매우 넓은 패스밴드와 높은 선형성을 보장하며 소량의(12dB) 네거티브 피드백만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 콘라드 존슨 스테레오 파워앰프 LP125 sa
▲ LP125 sa 커버를 벗긴 모습
▲ LP125 sa에 사용된 진공관
▲ 출력관으로 채널당 KT120 4개를 사용한다.
▲ LP125 sa 전원부
▲ LP125 sa 후면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콘라드 존슨의 현역기이자 차상위 플래그십 ET5 프리앰프와 LP125sa 매칭 상대로 사용한 스피커는 아발론 어쿠스틱의 콤파스 세라믹이다. 서두에 언급한 쿼드 ESL이 정전형으로 광대역의 입체적인 음장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스피커라면 아발론 콤파스 세라믹은 미국을 대표하는 광대역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의 최고봉이다. 이 스피커는 스펙트랄의 레퍼런스 앰프와 함께 또는 BAT 등의 앰프와 사용해본 적이 있지만 콘라드 존슨과는 처음이다. 참고로 디지털 소스기기는 에소테릭의 P-02X 트랜스포트와 D-02X DAC를 사용했다.
콘라드 존슨과 매칭한 아발론 콤파스 세라믹의 성능은 기존에 경험한 여러 조합보다 훨씬 더 음악적인 모습으로 환생했다. 아메리칸 스탠다드로 균형 잡힌 밸런스와 광대역에 초스피드, 고해상도 앰프 등에서는 다소 증류수 같은 음결을 들려주었던 아발론이다. 그러나 콘라드 존슨과의 매칭에서 아발론은 변신한다. 예를 들어 할리에 로렌의 ‘A whiter shade of pale’에서 밸런스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콤파스보다 약간 더 저역 쪽으로 내려오며 저역은 풍성하고 전체적인 음조는 차분하다. 한편 보컬과 각 악기의 음상은 크고 두께가 굵고 선명하다. 매우 우렁차고 우람한 스케일에 호쾌하며 분명한 외곽 윤곽 덕분에 불분명한 구석이 없다. 예를 들어 스펙트랄과의 매칭이 스튜디오 레코딩이라면 콘라드 존슨과의 매칭에서는 라이브 레코딩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우렁차고 우람한 스케일에 호쾌하며 분명한 외곽 윤곽 덕분에 불분명한 구석이 없다.
스펙트랄과의 매칭이 스튜디오 레코딩이라면 콘래드 존슨과의 매칭에서는 라이브 레코딩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게리 쿠퍼의 피아노와 레이첼 포저의 바이올린이 함께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SACD)를 들어보면 음색적인 부분에서 풍부한 짝수차 배음의 위력을 만끽할 수 있다. 피아노 타건은 매우 낮은 약음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바이올린의 경우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으며 촉촉한 윤기 덕분에 매우 풍부하고 동시에 보잉이 힘차다. 보컬 트랙에서도 포착되지만 아발론 등 광대역 음장형 스피커에서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중역대 디테일과 온기를 콘래드 존슨가 촘촘히 채워준다. 촉촉한 윤기와 다소 묵직하기까지한 바이올린의 힘찬 연주가 전에 없이 아발론의 중역을 농밀하게 어루만진다.
"피아노 타건은 매우 낮은 약음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바이올린은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으며 촉촉한 윤기 덕분에 매우 풍부하고 동시에 보잉이 힘차다."
좀 더 페이스를 올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를 올려보면 예상보다 더 탄력적이면서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드럼 터치가 드러난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가 마치 캔디를 머금은 듯 달콤하고 로맨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금까지 들어본 세라믹 트위터 중 다섯 손 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절묘한 하모닉스로 무조건 고해상도로 치닫는 현대 하이엔드 솔리드스테이트와는 다른 고역 하모닉스를 만끽하게 해준다. 드럼, 베이스, 섹소폰에 이어 합세한 데이브 브루벡의 피아노 터치는 리듬감 넘치게 스윙하며 능수능란하고 시원한 플레이가 돋보인다. 아발론 콤파스의 저역에 있어 그 동적 움직임은 크고 역동적이지만 그 표면 자체는 부드럽게 밀려오는 훈풍처럼 따스하고 부드럽다. 느긋하면서도 지나치게 뒤처지지 않는 상쾌한 리듬감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탄력적이면서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드럼 터치가 드러난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가 마치 캔디를 머금은 듯 달콤하고 로맨틱한 느낌을 자아낸다."
콘라드 존슨이 요리해내는 아발론 콤파스는 음의 어택에서부터 릴리즈에 이르기까지 매우 유연하며 탄력적이다. 그만큼 음의 진행 과정 중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만 서스테인이 약간 더 길게 느껴지며 끈질긴 핵이 느껴지는 진행 특성을 보인다. 이런 특성 덕분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레코딩(Esoteric SACD)에서 끈끈한 표면 텍스처와 함께 활시위를 한껏 당긴 듯 팽팽한 느낌이 지속된다. 음영이 짙고 다이내믹 컨트라스트가 높아 완급조절이 분명하지만 음을 빠르게 대충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새김이 분명하며 배음이 배경으로 하얗게 흩어지는 등 절대 가벼운 느낌이 없다. 배경이 암흑같은 비현실적이 형태가 아니라 실연의 그것처럼 매우 현실적이며 실체감이 잘 느껴진다.
"음영이 짙고 다이내믹 컨트라스트가 높아 완급조절이 분명하지만 음을 빠르게 대충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새김이 분명하며 배음이 배경으로 하얗게 흩어지는 등 절대 가벼운 느낌이 없다."
콘라드 존슨의 설계는 지극히 진공관 중심이며 단순히 진공관의 음색, 즉 짝수차 하모닉스만 활용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음악들에서 진공관의 음색적인 특성이 드러나며 리듬&페이스 및 다이내믹스 측면에서도 진공관의 특성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최근의 그 어떤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보다도 더 풍부한 배음과 그로 인한 음악적 늬앙스 표현이 기분 좋다. 그 느낌이 매우 감미롭고 따스하며 촉촉한 표면 질감으로 귀결된다. 뿐만 아니라 ‘Tutti’ 샘플러 중 ‘전람회의 그림’ 등을 들어보면 다분히 민첩한 고해상도의 컨트라스트로 흐르는 현대 하이엔드 앰프와는 다른, 독보적인 특성이 다수 포착된다. 솔리드 스테이트를 압도하는 아발론 콤파스 구동력에 더해 속이 꽉 들어찬 밀도감과 여유 넘치는 추진력이다. 브루크너 9번 ‘Scherzo’에서는 특히 강력한 추진력에 실려 힘 있고 탄력적인 진행이 돋보인다.
"최근의 그 어떤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보다도 더 풍부한 배음과 그로 인한 음악적 늬앙스 표현이 기분 좋다.
그 느낌이 매우 감미롭고 따스하며 촉촉한 표면 질감으로 귀결된다."
총평
어느 오디오파일이 말했다. 진공관 앰프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며 솔리드 스테이트는 절대 진공관 앰프의 음악적 늬앙스를 따라올 수 없다고 믿는 그다. “솔리드 스테이트가 냉동육이라면 진공관은 가공 후 바로 먹는 생고기 또는 활어회” 라고. 그 살아 있는 힘, 냉동되어 활기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는 음악에 콘라드 존슨는 미싱 링크를 찾아 에너지와 촉감을 채워준다. 황금빛 색채와 타오르는 진공관의 빛나는 열정이 음악을 활활 달구는 듯하다. 서걱거리거나 텅 비어 황량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음악에서도 콘라드 존슨은 아발론 콤파스 세라믹을 구해냈다.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에서 미처 채워넣지 못했던 열기와 촉감 그리고 온기, 살아 꿈틀거리는 듯 힘찬 생명력이 콘라드 존슨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다. ET5와 LP125sa는 미국 진공관 앰프의 좌장, 콘라드 존슨의 부활을 증명하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주요사양
진공관 프리앰프 ET5
게인: 25dB
최대출력: 20 Vrms
출력 임피던스: 100Ω
왜율: D0.15% THD(1.0 Vrms 출력)
주파수 응답: 2Hz ~ 100kHz(Unity Gain)
험 노이즈: 100dB 이하(2.5 V)
진공관: 6922 x 1
크기: 483 x 126 x 391mm
무게: 12.7kg
진공관 스테레오 파워앰프 LP125 sa
출력: 채널 당 125W (30Hz ~ 15kHz, 1.5% THD, 4Ω)
감도: 1.1 Vrms
주파수 응답: 20Hz ~ 20kHz (± 0.1 dB)
험 노이즈: 104dB 이하
입력 임피던스: 100 kΩ
진공관: 6189 x 1, 6N30P x 2, KT120 x 8
크기: 483 x 180 x 480mm
무게: 37.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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