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rad-Johnson | [리뷰] 콘라드존슨 ET3 SE, Classic 60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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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 전성시대
윌리엄 콘라드와 루이스 존슨 박사. 이 두 명의 오디오파일이 모여 만든 콘라드존슨은 오디오 업계 최고의 콤비로 기록된다. 1977년 PV1 이라는 첫 모델이자 프리앰프를 선보일 때만해도 콘라드존슨이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진공관 앰프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출중한 실력과 열정으로 뭉쳐 있었고 얼마간의 운도 따라주었다. 자원이 넘쳐나고 프리미엄급 앰프에 대한 열망이 불꽃 튀던 시절이었다.
그 이전의 오디오파일은 JBL과 알텍랜싱 등 랜싱 순혈주의들을 비롯 클립시 등 고능률의 혼 스피커들을 저출력 진공관 앰프로 구동했다. 마란츠 8B 나 다이나코 ST70같은 앰프만 해도 당시 기준엔 몬스터로 굴림 했었다. 하지만 스피커 설계의 변화와 더 높은 다이내믹레인지를 갖는 음악 소스의 발전은 당시 오디오 시스템으로는 재생의 한계에 부딪쳤다. 밥 카버가 등장했고 카버와 페이즈리니어 등의 솔리드 스테이트가 범람했다. 하지만 진공관 앰프 제조사에게 있어 TR 증폭을 하는 것은 마치 포크 싱어 밥 딜런이 갑자기 전기 기타를 들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 콘라드존슨의 창립자. 윌리엄 콘라드, 루이스 존슨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누군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하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정전형과 리본, AR 의 밀폐형 스피커들을 어떻게 제동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필요했다. 진공관 앰프 메이커 오디오 리서치 그리고 콘라드존슨은 선도적으로 진공관 앰프 설계를 개혁하며 진공관 앰프를 하이엔드 오디오의 영역으로 올려놓았다.
필자에게 있어서도 콘라드존슨은 특별하다. 오디오 리서치, BAT, 오더블 일루전스, CAT, 카운터포인트 등 기라성 같던 메이커 중 콘라드존슨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내게 무엇보다 진공관 프리앰프의 매력을 알려줬다. 솔리드 스테이트가 도달하기 힘들었던 유연한 소릿결과 풍윤한 배음, 피로에 지친 심신을 녹여주는 달콤한 중고역이 그저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련도 뒤따랐다. 솔리드스테이트 파워앰프와 매칭시 진공관 프리앰프와의 레벨, 임피던스 매칭 등에 대한 것이다. 결국 진공관 프리의 빈번한 사용은 부지불식간에 내게 전기적 지식과 매칭에 대한 학습까지 시켜주었다.
콘라드존슨의 신규 라인업의 수입이 재개되면서 이번이 총 세 번째 리뷰에 해당한다. 그러나 오래 전 친구를 만난듯 전혀 낯설지 않다. 금빛으로 물든 표면 색채와 은빛 버튼들, 내부를 보아도 콘라드존슨이 즐겨 쓰는 부품들이 빼곡하다. 무릇 세월의 흐름과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는 진공관 장인들의 제품이 그렇듯 아주 조금씩 라인업을 변경했고 내부 설계 변경에 매우 보수적인 모습도 여전하다. 그만큼 내구성과 함께 독창적인 퍼포먼스, 음색은 빛 바래지 않았다.
심플한 것이 아름답다 – ET3 SE 프리앰프
이번 리뷰의 주인공 ET3SE 프리앰프와 Classic Sixty SE 파워앰프는 그런 콘라드존슨의 이상이 매우 합리적으로 구현된 케이스다. 우선 ET3SE 프리앰프를 살펴보면 그들의 캐치프레이즈 ‘It just sounds right’처럼 매우 간결한 회로 구성에 단 한 군데도 불필요한 요소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미니멀한 모습이다.
▲ Conrad-Johnson ET3 SE 프리앰프
대신 내부 회로를 보면 최소한의 부품을 투입하되 고품질 소자를 사용하며 신호경로를 줄여 신호 순도를 해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입/출력단에 모두 금도금 단자에 내부엔 테프론 캐패시터를 사용한다. 하얀색 캐패시터는 콘라드 사운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더불어 저 노이즈의 메탈 필름 저항을 사용하는 등 심플한 회로 안에 고품질 소자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진공관은 단 한 개만 사용하는데 6922, 듀얼 트라이오드 진공관으로 6DJ8 등과 호환관이다. 대게 오디오 리서치나 BAT 등이 이후 6H30으로 변경했던 것과 달리 콘라드존슨은 여전히 6922를 활용하고 있다. 사실 포닉 노이즈만 제대로 제어 가능하면 개인적으로도 6922 진공관의 음악성을 더 높게 치는 편이다. 프리앰프의 핵심 파트 중 하나인 볼륨단은 일일이 저항을 사용해 릴레이 스위치로 작동시키는 레지스터 래더 타입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대게 높은 제조 단가 및 번거로움 등의 이유로 많은 앰프 제조사들이 현재는 채택하지 않는 방식이다.
▲ ET3 SE 전면부
▲ ET3 SE 후면
ET3SE 프리앰프의 전압 게인은 6922라는 진공관을 통해 얻어지며 라인스테이지는 제로 피드백 회로다. 전체적으로 제조단가를 절감하는 형태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해 자신들이 이상으로 하는 음질과 퍼포먼스를 견고히 하고 있다. 휘황찬란한 최신 하이엔드 프리앰프에 비해 단출해 보일지 모르지만 설계 자체는 매우 보수적인 동시에 우직하게 음질 중시형으로 밀고 나간 인상이다. 이는 플래그십 GAT 또는 CT5 등 동사의 레퍼런스급 프리앰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탁월한 다이내믹스 - Classic Sixty SE 파워앰프
파워앰프인 Classic Sixty SE로 눈길을 돌려보니 과거 프리미어 시리즈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금빛 패널에 전면에 단단히 조여 놓은 볼트와 큼직한 전원 스위치 그리고 무엇보다 진공관을 덮고 있지만 아련히 불빛을 내비치는 독특한 문양이 그려진 커버 디자인이 반갑다.
▲ Conrad-Johnson Classic 60 SE 파워앰프
Classic Sixty SE 또한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매우 심플한 회로에 고급 소자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있다. 전통적인 구성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많은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진 회로로 사용방법 또한 매우 간결하고 편리하다. 전체적인 구성은 싱글 엔디드 트라이오드 볼티지 게인과 위상 반전 드라이브단이 앞단에 위치하고 그 뒤로는 각 채널당 두 개의 KT120 출력관으로 구성된 증폭단이 위치한다. 초단관은 역시 듀얼 트라이오드 6189 한 개가 담당해 두 개의 6922 드라이브관을 드라이브한다. Classic Sixty SE 는 EL34를 출력관으로 사용하는 스탠다드 버전과 달리 KT120을 출력관을 사용해 채널당 60와트의 출력을 제공하며, 8옴과 16옴에도 대응 가능하다.
▲ Classic 60 SE는 출력관으로 KT120을 사용한다.
▲ 초단관은 듀얼 트라이오드 6189 1개와 6922 2개를 사용한다.
▲ Classic 60 SE 후면
매우 높은 전압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디스크리트 타입의 고효율 레귤레이터가 설계되어 있는 모습. 내부엔 프리앰프와 마찬가지로 고정밀 메탈 필름 저항과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티렌 커패시터 등이 선별되어 투입되어 있는 모습. 모두 콘라드존슨의 전매특허와 같은 넓은 다이내믹레인지와 드라마틱한 표현력 등 단 하나의 과녁을 향해 있는 설계다. 마지막으로 진공관 앰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역시 여타 진공관 앰프와 콘라드존슨을 확실히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콘라드존슨 프리/파워앰프와 탄노이의 매칭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탄노이 중에서도 프레스티지 모델 켄싱턴 GR은 콘라드존슨으로 구동하는데 고역부터 저역까지 어떤 부족함도 없었다. 탄노이의 경우 동축 유닛을 사용하면서 고역 데시벨과 롤 오프 등을 조정 가능한데 테스트를 위해 모두 디폴트 상태로 조정하고 테스트에 들어갔다. 소스기기는 현 세대 다이렉트 턴테이블의 신기원을 이룬 브링크만 오아시스 턴테이블과 에소테릭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N-05 등을 사용했다.
▲ 소스기기로 사용한 브링크만 오아시스 턴테이블
▲ 탄노이 켄싱턴 GR을 스피커로 사용했다.
KT120을 채널당 두 알씩 탑재해 패러렐 푸시-풀 증폭하는 덕분에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강력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근음이 매우 뚜렷하며 흔들림 없이 견고하고 안정감이 넘친다. 무게 중심은 낮은 편으로 시종일관 힘있으면서도 차분한 톤으로 들린다. 특히 성악이나 보컬 레코딩에서 콘라드존슨의 중역대 표현력은 가장 매력적이다.
그 중에서도 남성 보컬이 두드러지는데 마티아스 괴르네의 슈베르트 가곡집 중 ‘지는 태양에 부쳐’, ‘방랑자의 밤 노래’ 등에서 낮고 그윽하게 읊조리는 부분이 깊고 중후하다. 유독 도톰하고 유연한 중역 덕분에 매우 농밀하며 중후한 맛을 잘 살려준다. 이 앰프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누가 뭐래도 찰진 중역이다.
"유독 도톰하고 유연한 중역 덕분에 매우 농밀하며 중후한 맛을 잘 살려준다.
이 앰프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누가 뭐래도 찰진 중역이다."
단 라우린의 지휘하고 리코더까지 연주한 비발디 리코더 협주곡을 들어보면 잔향 특성과 고역의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고역에서 매우 많은 잔향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콘라드존슨의 고역은 끝없이 냉정하게 뻗어나가는 쾌감을 동반하기 보다는 오히려 달콤하고 은은하게 스피커의 고역을 어루만진다. 촉감은 따스하며 촉촉하고 넓은 면적을 통해 공간을 넉넉하고 풍윤하게 장악하는 고역이다. 탄노이 켄싱턴 GR의 동축 드라이버에서 술술 풀려나오는 여유롭고 시원한 고역에 농밀하고 중후한 음색이 스며들었다. 마치 평양냉면의 진국을 마시는 듯 그윽하다.
"고역에서 매우 많은 잔향이 찬란하게 펼쳐진다.
콘라드존슨의 고역은 끝없이 냉정하게 뻗어나가는 쾌감을 동반하기 보다는
오히려 달콤하고 은은하게 스피커의 고역을 어루만진다."
콘라드존슨의 일관적인 특성들, 즉 호쾌한 스테이징과 남성적인 다이내믹스, 완급조절과는 반대로 매우 부드럽고 온도감 있는 표면 텍스처. 이런 특성들은 특히 저역 다이내믹스 표현이 쉽지 않으면서 약간 차갑고 음상이 높게 형성되는 스피커에서 특히 빛난다. 어떤 스피커도 콘라드 앰프와 만나면 육중하고 중후한 무게감이 더해지며 들뜨기 쉬운 음의 표면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이런 특성은 ‘70~80년대 블루스 기반의 록 음악도 피로하지 않게 오래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톤은 더욱 진하게 들리며 권위적인 리듬섹션은 탄력적인 다이내믹스 표현 덕분에 느슨하면서도 끈질기고 추진력이 강하게 걸린다. 특히 끈적이는 텐션과 중역 밀도는 마치 ATC 의 미드레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이내믹스 표현 덕분에 느슨하면서도 끈질기고 추진력이 강하게 걸린다.
특히 끈적이는 텐션과 중역 밀도는 마치 ATC 의 미드레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트리오 토이킷의 [Kudos] 중 ‘Gadd a tee’같은 빠른 스피드의 피아노 트리오 편성 재즈를 들어보면 시간축 선상에서 어떤 표현력을 가졌는지 엿볼 수 있다. 사이드 심벌이 산뜻하고 넓게 퍼져나가며 물결친다. 이어 드럼과 더블 베이스, 피아노의 빠르고 간결한 인터플레이에서는 콘라드존슨의 약간 느리지만 대신 육중한 힘이 가득 실린 탄탄한 리듬감이 일품이다. 특히 거시적인 매크로 다이내믹스가 돋보이며 각 악기의 세부묘사보다는 모든 주자들이 혼연 일체되어 연주하는 동적 움직임이 좋다. 코플랜드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팡파르’에서 펼쳐지는 무대는 무대와 무척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듯 다이내믹한 무대의 열기를 박진감 넘치게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특히 거시적인 매크로 다이내믹스가 돋보이며
각 악기의 세부묘사보다는 모든 주자들이 혼연 일체되어 연주하는 동적 움직임이 좋다."
총평
콘라드존슨의 역사는 매우 길며 긴 역사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시종일관 우렁차고 시원시원한 멋을 1977년 당시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십 년 동안 콘라드존슨은 무엇을 이룩한 것일까 ? 아니, 그들은 무언가 필요 없으면서도 주목받기 위한 기능이나 회로를 개발해 마케팅 할 생각 자체가 없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많은 양념을 치지도, 입이 시리도록 차갑고 냉정하게 예각을 그리지도 않는다. 요컨대 최신 초 하이엔드 앰프의 조류와도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한다. 사실 전통이란 그런 것이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21세기를 사는 청춘들에게도 역사적 생명력과 가치가 동일하게 빛나는 것. 콘라드존슨의 ET3SE 와 Classic Sixty SE 는 시대의 유행과 상관없이 존경받는 메이커의 표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주요사양
진공관 프리앰프 ET3 SE
게인: 25dB
최대출력: 20 Vrms
출력 임피던스: 100Ω
왜율: 0.15% THD(1.0 Vrms 출력)
주파수 응답: 2Hz ~ 100kHz(Unity Gain)
험 노이즈: 98dB 이하(2.5 V)
진공관: 6922 x 1
크기: 483 x 84 x 333mm
무게: 5.9kg
진공관 스테레오 파워앰프 Classic 60 SE
출력: 채널 당 60W (30Hz ~ 15kHz, 1.5% THD, 4Ω)
감도: 0.7 Vrms
주파수 응답: 20Hz ~ 20kHz (± 0.3 dB)
험 노이즈: 96dB 이하
입력 임피던스: 100 kΩ
진공관: 6189 x 1, 6922 x 2, KT120 x 4
크기: 483 x 168 x 336mm
무게: 18.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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