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yne Audio | 스코틀랜드의 새로운 국보 Fyne Audio F1-12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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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국보로 승격하다 !
자, 간단한 퀴즈 하나. 제임스 와트, 애덤 스미스, 알렉산더 플레밍, 데이빗 흄, 월터 스코트의 공통점은? 너무 옛날 사람들인가? 그럼 현재 살아있거나, 활동 중인 사람들도 뽑아보자. 고든 램지, 숀 코너리, 제라드 버틀러, 이완 맥그리거, 제임스 맥커보이, 알렉스 퍼거슨, 데이빗 번(토킹 해즈의 리더), 앵거스 영(AC/DC의 반바지 기타리스트) ... 심지어 폴 매카트니까지!
그렇다. 모두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이중에는 외국에서 사는 분들도 있지만, 그 뿌리는 모두 여기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대영제국이라 부르는 나라의 거대 유산 중 상당수가 스코틀랜드에서 나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셜록 홈즈, 비틀즈, 증기 기관, 경험론, 국부론, 페니실린, 00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 최고의 프렌치 요리, 토킹 해즈, AC/DC …
영국의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는 국토 면적이 우리 남한보다 크다. 약 8만평방제곱 킬로미터나 된다. 아마도 1.5배 정도. 하지만 인구는 고작 550만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의 1/9 정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저런 인물들이 끝도 없이 나온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본다.
오디오만 해도 그렇다. 이미 린(Linn)과 탄노이로 스코티쉬 오디오의 저력을 보여준 현재, 파인(Fyne)이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대체 스코틀랜드는 어떤 곳일까? 이번에 파인의 F1-12를 만나면서, 이 나라에 대한 관심도 함께 올라간 것이 사실이다. 스코틀랜드의 국보라고 하면 숀 코너리, 폴 매카트니, 린, 탄노이 등이 떠오르는데, 파인이 곧 이 명단에 오를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파인(FYNE)이라는 네 글자
아주 오래 전에 밥 딜런은 “사랑은 그냥 네 글자의 단어일 뿐.”(Love is just a four letter word)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고 또 숭배되어 그 자체의 의미가 오히려 퇴색되었다는 뜻이다. 일리가 있다. 세상에 사랑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도 많다. 이 점을 잊고, 그냥 사랑으로만 만사를 해결하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런데 여기서 4 글자로 된 단어는 “러브”(Love)에서 알 수 있듯, 아주 쉽게 각인이 된다. 러브의 반대인 헤이트(Hate)를 비롯, long, kind, fact, baby, good 등 무수히 많다. 아바(Abba)도 네 글자로 정말 쉽고, Nike, Sony, Elac, Quad 등의 브랜드도 떠오른다. 이 리스트에 추가할 것이 바로 파인(Fyne)이다
난 처음에 파인을 만났을 때, 영어로 좋다, 라는 의미의 “fine”을 교묘하게 바꾼 단어로 알았다. 그럴 경우, 파인의 스피커는 쉽게 말해, “좋은 스피커”가 된다. 정말 평범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않는가? 오로지 아이(i)를 와이(y)로 바꾸기만 해서 이런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아무튼 작년 초에 영국을 방문해서 여러 오디오 숍을 탐방한 일이 있는데, 정말로 빠른 속도로 파인의 제품들이 소개되는 현장을 목격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런 빠른 성장은 내게 그리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품을 직접 보고, 그 음을 들으면 이런 부분을 누구나 납득하리라 생각한다.
폴 밀스 박사에 관하여
사실 파인의 다양한 제품을 모두 아우르는 설계자는 폴 밀스(Paul Mills) 박사다. 나는 파인을 알게 되면서 이 분을 만나고 싶었지만, 코비드 19 덕분에 도무지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메일을 보내 간단한 약력을 받아봤다. 사진도 몇 장 봤는데, 역시 겉보기에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폴 밀스 박사는 1959년, 영국 랭카셔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당연히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했다. 1960년대부터 불어 닥친 브리티쉬 인베이션의 주역인 비틀즈, 롤링 스톤즈, 더 후 등이 대중 음악계의 판도를 바꿨을 뿐 아니라, 이후 70년대에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등 수퍼 밴드들이 계속 지배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음악을 만든 나라에서 자연스럽게 오디오쪽에서도 시선이 갔다. 여기서 만든 하이파이가 일종의 스탠다드가 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일. 틴 에어저 시절에 이런 경험을 했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실제로 밀스 박사가 좋아하는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의 < The Dark Side of Moon >과 퀸의 < Bohemian Rhapsody >라고 한다. 프로그레시브 음악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현행 파인에서는 총 네 가지의 시리즈가 런칭되어 있다. 맨 위로 F1이 있고, 그 아래로 F700, F500 그리고 F300이 있다. 마치 BMW 승용차의 3, 5, 7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하이어라키인데, 그 7 시리즈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F1이라 보면 된다. 이른바 수퍼 카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 포지션과 내용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에 반해서 이번에 소개할 F1-12는 일종의 대형기에 해당한다. 물론 12인치 드라이버 하나만 달랑 박힌 외관을 보면, 도무지 대형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절대로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도쿄 오디오 쇼의, 거의 20평이 넘는 시청실을 가뿐하게 커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므로, 이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커다란 원형 기둥을 연상케 하는 외관은, 상부에 돌출된 동축형 드라이버의 존재감을 보다 강화시키고 있으며, 빼어난 피니쉬는 고급스런 느낌을 주고 있다. 사용할수록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드라이버는 12인치 구경. 미드베이스 중앙에 트위터가 삽입된 방식으로, 온건한 동축형 스타일이다. 왜 이런 표현을 쓰냐하면, 오로지 미드레인지의 중앙에 트위터를 박은 여타의 동축형과는 확실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KEF, 비엔나 어쿠스틱스, TAD 등 여러 회사들이 동축형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고역에만 적용하고 있다. 저역까지 포함한 컨셉은 탄노이와 파인 정도라 보면 된다. 옛날에 알텍이 그랬고.
사실 하나의 드라이버에 모든 대역을 커버하는다는 발상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실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풀레인지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동축형이 나온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그 장점을 말하면, 모든 음성 정보가 하나의 드라이버에서 나오기 때문에, 타임 얼라인먼트 부분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갖는다. 또 일종의 포인트 소스, 그러니까 점음원에서 나오는 음은 정확한 이미지 구현에도 뛰어나다. 더구나 파인은 인클로저의 통울림이나 간섭을 억제한, 매우 현대적인 발상의 디자인을 채택했으므로, 이 방식의 장점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반응이 빠르고, 일체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진득한 음이 나오는 부분은 확실히 온고지신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단점이라면, 아무래도 저역의 핸들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중고역의 디테일을 위협할 요소도 있다. 많은 회사들이 동축형을 지향하면서도 저역을 따로 분리해서 되도록 중고역부와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기술로 무장한 파인의 드라이버들은 이런 문제를 가뿐히 커버하고 있다.
또 하나는 프레센스(Presence) 기능. 무슨 말인가 하면, 밴드 중앙에 보컬이 서 있을 경우, 이 보컬의 존재감을 보다 확장시킬 경우에 사용한다. 그 경우, 보컬이 보다 앞으로 나와 밴드와의 거리를 더 두게 된다. 즉, 연주의 핵심이 되는 악기나 보컬의 존재를 보다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두 노브를 적절히 활용하면, 감상의 묘미가 배가될 것이라 확신한다.
한편 인클로저 하단을 보면, 일종의 배출구를 볼 수 있다. 즉, 다운 파이어링(down firing)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냥 밑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배출구쪽에 일종의 디퓨저를 설치해 360도 사방으로 발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보다 명료하면서 자연스런 저역을 얻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이 기술을 베이스 트랙스라고 한다.
스펙 둘러보기
아무튼 드라이버부터 인클로저, 크로스오버 등 모든 부분에 걸쳐 세세한 연구와 테스트가 가해져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파인의 현재 위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단순히 내공이나 경력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접목이 되어 경쟁자를 압도하는 기술로 완결되었다는 부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시청에는 나그라의 HD 프리 및 파워가 동원되었다. 파워는 모노 블록 형태로, 8오옴에 250W의 출력을 낸다. 특히, 30W까지는 클래스 A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무튼 이 정도 머신을 만나는 순간, 본 기의 가능성과 장점이 활짝 열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스기는 TAD의 D600 CD 플레이어를 동원했다.
첫 곡은 길버트 캐플란 지휘, 말러의 교향곡 2번 1악장. 초반의 위험스런 분위기에서 점차 편성이 거대해지는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포착된다. 스테이지가 넓고 또 깊다. 과연 대형기의 위용이다. 투티에서 폭발할 때의 흉폭한 에너지는 정말 묵은 체증을 단박에 씻어내린다. 그 한편, 현의 아름다운 질감과 다양한 관악기들의 음색 등이 정밀하게 재현되며, 전체적인 밸런스가 뛰어나다. 마치 콘서트 홀에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어서 정경화가 연주하는 브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악장. 과연 데카 녹음과 상성이 좋다. 마치 LP를 듣는 듯하다. 허공에 부유하는 바이올린은 심지가 있고, 위로 강력하게 뻗으며, 그 주변의 오케스트라가 꿈꾸듯 펼쳐진다. 골격이 튼실하고, 반응도 빠르면서, 살집도 좋은 음이다. 듣는 이를 강력하게 사로잡는 내용을 갖고 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Have You Never Been Mellow 로 분위기를 바꿨다. 명징하고, 선명한 어쿠스틱 기타의 반주에 이어지는 천사의 목소리. 풋풋하고, 상큼하며 또한 에로틱하다. 탄탄한 중역을 바탕으로 특히 보컬에선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들려준다. 다양한 악기들이 오소독스하게 엮인 가운데, 올리비아의 보컬은 그냥 넋을 잃게 만든다. 드럼과 베이스의 강력한 어택도 빼놓을 수 없다. 확실히 깊이 떨어진다. 무대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 이 노래에 담긴 애절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대단한 내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