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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독일 오디오피직(Audio Physic)의 Virgo(비르고) 스피커는 각별하다. 오디오 리뷰어로서 처음 원고를 쓴 스피커였기 때문이다. 당시 모델은 Virgo 25. 오디오피직 창립 25주년을 맞아 2010년에 나온 모델이었다. 과연 국내에 ‘비르고당’이라는 열혈 추종자들이 있을 만큼 빼어난 소리를 내줬다. 아래 모델 Tempo 25와 소릿결은 비슷했지만 양감과 에너지감, 그리고 보다 매끄러운 음의 감촉이 달랐다. 

최근 풀레인지 시청실에서 New Virgo III 스피커를 들었다. 겉보기에는 Virgo 25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슬림한 배플, 양 측면 하단에 있는 우퍼 2발, 뒤로 경사진 인클로저, 배플 상단에 몰려있는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등 비르고 스피커의 DNA는 여전하다. 소리는? 몇 년 동안 잊고 살았던 오디오피직 비르고 사운드가 이 정도였나 싶었다. 특히 현장에 있는 듯한 무대감과 또렷한 음상, 해상도, 스피드가 돋보였다.




Virgo 스피커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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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Virgo III라는 모델명이 마음에 걸린다. Virgo III는 이미 2001년에 나왔던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 ‘New’를 붙인 것인지 정확히 파악은 안되지만, 오디오피직에서는 트위터(HHCT III)와 미드레인지 유닛(HHCM III)이 3세대로 진화했기에 Virgo III라고 명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오디오피직 홈페이지에는 그냥 Virgo III로만 나온다. 



비르고 변천사는 롱런 모델답게 복잡하다. 오리지널 Virgo는 오디오피직 설립 4년 뒤인 1989년에 나왔고, Virgo II는 1995년에 나왔다. 점음원 효과를 겨냥해 슬림 배플 상단에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을 바싹 붙이고, 슬림 배플을 유지하기 위해 양 측면에 우퍼를 단 것은 동일하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측면 6인치 페이퍼 콘 우퍼가 좀더 밑으로 내려갔고, 0.75인치 알루미늄 트위터 가드의 디자인이 바뀐 것이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두 모델 모두 전면 하단에 있다.


Virgo III는 2001년에 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6.5인치로 늘어난 노멕스 콘 우퍼 위에 같은 직경의 노멕스 돔형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장착했다는 것. 물론 한 캐비닛당 우퍼 2발, 패시브 2발 구성이다. 이에 따라 포트는 사라졌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으로 이전 모델들과 동일하지만 감도는 88.5dB에서 90dB로 늘어났다. 또한 0.75인치 알루미늄 트위터가 1인치 링 라디에이터로 바뀌고, 미드레인지 유닛이 4인치 페이퍼 콘에서 4.5인치 알루미늄 콘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다.


그러다 2007년 등장한 Virgo V에서 비로소 지금처럼 인클로저가 뒤로 7도 기울어졌다. 물론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이 청취자 귀에 도달하는 시간과 크로스오버 주파수 부분에서의 위상 일치를 위해서였다. 또한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없애고 바닥면에 다운파이어링 포트를 달았다. 하지만 비르고 역사에 있어서 Virgo V의 가장 큰 특징은 오디오피직의 상징과도 같은 HHCT(트위터)와 HHCM(미드레인지)이라는 자체 제작 유닛을 처음 투입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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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오디오피직 창립 25주년인 2010년에 Virgo 25, 2012년에 이를 소폭 업그레이드한 Virgo 25 Plus가 나왔다. 25주년 모델의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은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을 고정시킨 플레이트가 인클로저와 디커플링되었고, 양 측면 우퍼를 덮는 그릴이 타원형에서 평행사변형으로 변모했다는 것. 설계상으로는 2세대 HHCT II와 HHCM II 유닛이 투입된 점, 우퍼가 6.5인치 노멕스 콘에서 7인치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 콘으로 바뀐 점이 다르다. 



New Virgo III 기본 팩트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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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출시된 New Virgo III는 기본적으로 3웨이, 4유닛 베이스 리플렉스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다. 회절을 줄이기 위해 전면 배플을 슬림하게 한 점, 이를 유지하면서 저역 양감을 늘리기 위해 측면 우퍼 2발 구성을 취한 점, 우퍼 움직임으로 인한 인클로저 진동을 막기 위해 두 우퍼가 ‘Push-Push’로 움직이는 점,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의 타임 얼라인먼트와 위상 일치를 위해 뒤로 7도 기울어진 점 등은 2007년 Virgo V 모델 때부터 이어져온 설계상 특징이다. 

유닛 구성을 살펴보면 배플 상단에 1.75인치 HHCT III 트위터, 6인치 HHCM III 미드레인지가 전용플레이트에 박혀 있고, 양 측면 하단에는 7인치 우퍼가 1발씩 장착됐다. 진동판 재질은 모두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CCAC)이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인클로저 밑면에 큼지막하게 나있고, 싱글 와이어링에 대응하는 WBT Nextgen 스피커 터미널은 후면 하단 플레이트에 장착됐다. 스피커를 위에서 보면 내부 정재파를 줄이기 위해 뒤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고 후면은 곡선형태를 보인다. 마감은 화이트/블랙 하이 글로스, 리얼 체리/월넛 우드 4종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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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과 스펙을 Virgo 25나 25 Plus와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다. 폭은 230mm, 안길이는 400mm로 동일하고 높이만 1045mm에서 1055mm로 늘어났다. 대신 무게는 30kg에서 29kg으로 살짝 줄었는데, 이는 뒤에서 언급할 내부 댐핑재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공칭 임피던스가 4옴인 점, 감도가 89dB인 점, 주파수응답특성이 30Hz~40kHz인 점, 권장 앰프출력이 30~180W인 점도 동일하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디오피직은 통상 중역과 저역 크로스오버는 150Hz~300Hz 사이, 고역과 중역 크로스오버는 2kHz~3kHz 사이에서 이뤄진다고 밝히고 있다. 미드레인지 커버 범위가 넓은 점이 눈길을 끈다 


New Virgo III 설계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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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Virgo III 스피커의 내부

New Virgo III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길래 오디오피직에서 당당히 ‘New’를 붙였을까. 우선 필자가 보기에 오디오피직이 스피커를 설계하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진동과 공진 제거’다. 오디오피직은 스피커 드라이버가 인클로저에 전해주는 진동, 반대로 인클로저가 스피커 드라이버에 전해주는 진동을 ‘재생 사운드의 가장 큰 적’으로 보고 있다. 양 측면 우퍼 2발이 ‘Push-Push’로 움직이는 것 역시 ‘Push-Pull’로 움직일 경우 인클로저가 드라이버 움직임에 따라 쓸데없이 좌우로 진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쪽 측면에만 우퍼를 달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러한 ‘진동/공진 제거’ 기술을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에 적용시킨 게 지금은 오디오피직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HHCT(Hyper Holographic Cone Tweeter)와 HHCM(Hyper Holographic Cone Midrange)이다. 음의 출발점인 드라이버에서부터 불필요한 공진과 진동을 제거해 ‘하이퍼 홀로그래픽’ 사운드를 얻어내려 한 것이다. 2007년 Virgo V 모델 때 처음 채택된 HHCT/HHCM 유닛은 이후 2010년 Virgo 25 때 2세대로 진화했고, 시청기인 New Virgo III에는 3세대 버전이 장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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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CT와 HHCM의 핵심은 세라믹으로 코팅한 알루미늄 진동판(CCAC. Ceramic Coated Aluminium Cone). 진동판 자체를 가볍고 강하게 만들어야 쓸데없는 공진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라운드(엣지) 둘레에 실리콘/고무 링을 둘러 메탈 진동판의 골칫거리인 특정 주파수에서의 링잉(ringing)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였다(ACD. Active Cone Damping). HHCM 미드레인지는 여기에 서로 다른 재질의 이중 바스킷(Dual Basket) 구조를 채택하고 두 바스킷 사이에는 추가로 댐핑재를 집어넣어 진동판과 인클로저 사이에 진동이 오고 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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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과 진동을 없애기 위한 오디오피직의 노력은 내부 브레이싱(보강목)에도 베풀어졌다. 이는 New Virgo III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데, 바로 구멍이 숭숭 뚫린 세라믹 폼(Ceramic Foam)을 보강목으로 씀으로써 4개 유닛 후면에서 발생하는 후면파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흡수토록 한 것이다. 오디오피직에 따르면 세라믹 폼은 85%가 공기이지만 MDF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고 한다. 세라믹 폼은 또한 MDF 보강목에 비해 15%만 써도 되기 때문에 인클로저의 내부용적을 늘리는 부수효과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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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치기 쉬운 스피커 터미널에도 진동 대책이 마련됐다. 오디오피직이 VCT(Vibration Control Terminal)라고 명명한 것으로, 스피커 터미널을 인클로저에 직접 장착하지 않고 댐핑력이 좋은 알루미늄 플레이트에 장착했다. 또한 플레이트와 인클로저 사이에는 일종의 합성고무인 네오프렌(Neoprene)을 채워넣어 스피커케이블을 타고 들어온 진동이 스피커 인클로저로 넘어오는 것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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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는 오렌더의 DAC 내장 네트워크 뮤직서버 A100, 오디아 플라이트의 인티앰프 FLS10을 동원했다. FLS10은 클래스AB 증폭으로 8옴에서 200W, 4옴에서 380W를 내는 풀 밸런스 인티앰프. 2옴에서도 700W를 뿜어낸다. 오렌더 앱으로 주로 타이달(Tidal) 음원을 들었다. 



Andris Nelsons -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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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후 다음날 미세먼지가 사라진 것처럼 청명하고 깨끗하며 투명한 음이흘러나온다. 앞서 제시 쿡의 ‘Vertigo’를 들으며 ‘비르고는 역시 음장감과 스피드가 좋은 스피드’라고 감탄했는데, 이 곡에서는 이처럼 끈적임과 잡내가 없는 맑은 사운드에 감탄했다. 그만큼 드라이버 유닛과 인클로저에 그 어떤 자기주장이나 색깔이 없다는 반증이다. 그냥 음만이 사운드스테이지에서 뛰어놀고 있다. 

음의 촉감도 건조하거나 눅눅하지 않고 뽀송뽀송하면서도 미끈하다는 게 특징. 음의 윤곽선 역시 흐릿하거나 색번짐 없이 또렷하기만 하다. 하지만 4악장 막판 2분 팀파니가 주도하는 총주를 들어보면 팀파니 연타가 좀더 과격하게 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막판 관객 환호를 포획해서 끝까지 밀고 나가는 솜씨는 명불허전. 역시 노이즈 관리가 잘 된 덕분으로 보인다. 



Anne Sophie Von Otter ‘Baby Plays Around' For Th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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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으면 그녀가 닿을 것 같다’는 표현을 지금까지 많이 썼지만 진짜 그랬다. 오터의 들숨과 기척이 여실한 것이다. 그러면서 어디에도 묻히는 음이 없다. 비르고 스피커는 파워를 내세우기보다는 이처럼 각 대역 밸런스와 해상력을 찬찬히 맛보면서 음악의 디테일에 빠져들게 하는 스피커다. 피아노 음은 맑고 청명하며, 오터의 보컬은 질감과 기교가 잘 느껴진다. 그 레벨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스피커가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30년 가까이 조금씩 조금씩 업그레이드해온 비르고 정도 되는 스피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비르고는 자기주장이 없는 스피커다. 그냥 음만을 슬쩍 띄어놓은 채 정작 자신은 사라진다. New Virgo III는 과연 해상력의 스피커, 대역밸런스의 스피커, 사운드스테이지의 스피커다.



Pink Floyd ‘On The Run’(Dark Side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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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비해 게인이 높게 녹음된 이 곡에서는 처음부터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의 극장 사운드가 터져나온다. 7인치 알루미늄 우퍼 2발을 푸쉬푸쉬로 움직이면 이 정도 다이내믹스를 얻을 수 있구나 싶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서 못내 아쉬웠던 양감과 펀치감, 음의 두께감이 이 곡으로 단번에 만회가 됐다. 무대 왼쪽 앞에서 시작해 오른쪽 뒤로 뛰어가는 발자국의 사실감은 그야말로 대박 수준. 역시 음장에 최적화한 스피커임이 분명하다. 제 장기를 스스럼 없이 발휘하고 있다.

헬리콥터 사운드 역시 엔진과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3D 극장에 온 것처럼 리얼하기 짝이 없다. 이어 들은 ‘다크나이트’ OST의 ‘Aggressive Expansion’ 테마는 수십 명이 북을 두들기는 것 같아 가슴이 마구 뛴다. 역시 저역은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저역에 이처럼 다이내믹스가 넘쳐나는데도 해상력을 잃지 않고 있는 점 역시 이번 New Virgo III의 특기라 할 만하다.


Nils Lofgren ‘Keith Don’t Go’(Acoustic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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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 기타의 이미지가 위협적일 만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기타를 초근접 촬영을 해서 음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고속카메라로 지켜보는 듯하다. 손가락에 순간접착제를 발라놓은 것처럼 기타줄에 찰싹찰싹 붙는다. 그리고 기타 저 멀리 뒤편에서 환호하는 관객들. 스피커 2대가 펼쳐내는 스테레오 사운드 매직의 현장이다. 라이브 분위기를 이처럼 잘 살려주는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기타의 고역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보컬과 함께 쭉쭉 뻗는데 쏘거나 거칠지가 않다. 세라믹 코팅 알루미늄 콘 트위터의 탁월한 물성과 1.75인치라는 넓은 진동판 면적 덕분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음들이 뭉치거나 뭉개지지 않는다. New Virgo III는 해상력 갑의 스피커이자,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소리를 남김없이 다 들려주는 스피커다.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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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Virgo 25 리뷰에 이렇게 썼었다. ‘템포 25가 승차감(음악성)이 좋은 중형 세단이라면, 비르고 25는 태생적으로 노면굴곡을 가감없이 전해주며 질주하는 퍼포먼스형 대형 스포츠카 느낌이다.’ 이는 2019년에 들은 New Virgo III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청을 한 날 앞서 들었던 스피커들과의 거리를 현격히 벌린 느낌. 스피커 좀 들을 만하다면 무조건 2000만, 3000만원이 넘어가는 요즘, New Virgo III의 가격대는 오히려 착하게 느껴질 정도다. 30년 동안 자신이 믿는 스피커 설계를 밀고 나간 오디오피직의 뚝심과 그 결과물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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