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are | 시골밤길을 걷는 듯한 노이즈 프리 R35 & R15 포노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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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앰프의 최우선 덕목은 무엇일까. 우선 아주 여린 신호를 증폭한다는 점에서 SN비가 좋아야 한다. CD 신호가 2V인데 비해 MM 카트리지가 5mV, MC 카트리지가 0.5mV 내외에 불과하다. MM 포노앰프가 40dB, MC 포노앰프가 60dB로 세게 증폭하는 것도 이처럼 입력신호가 워낙 미세하기 때문이다. 40dB면 100배, 60dB면 1000배 증폭한다는 얘기다.
이러니 노이즈가 한 톨이라도 유입되면 포노앰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전원부를 분리하는 포노앰프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원부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노이즈(EMI, RFI)를 아예 처음부터 격리시키자는 취지다. 전원부를 내장하는 경우에도 전원트랜스만큼은 쉴딩하는 경우가 많다. 포노앰프가 대부분 그라운드 단자를 마련하는 것 역시 접지노이즈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다.
두번째는 다양한 게인과 부하 임피던스/커패시턴스를 지원해야 한다. 이게 다 MM이든 MC든, 포노 카트리지에 업계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출력도 다르고 내부 임피던스와 커패시턴스가 다르다. 이러니 신호를 받는 입장인 포노앰프에서 하나하나 세팅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뒷단인 프리앰프가 2V 입력 기준에 맞춰 제 할 일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세번째는 증폭과 EQ 필터 성능이 좋아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40~60dB에 달하는 전압 게인을 확보하는 일과, 업계 표준이라 할 RIAA 커브를 제대로 복원시키는 일이 포노앰프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MC 신호는 미리 한 번 더 ‘튀겨' 준 후 메인 증폭단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어떤 회로를 썼는지가 관심이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승압트랜스이거나 헤드앰프이거나.
이런 관점에서 이번 시청기인 프라이메어(Primare)의 R35와 R15를 따져보면 ‘본격파' 포노앰프라 할 수 있다. ‘포노 내장'이라는 구색만 갖춘 인티앰프가 넘쳐나는 요즘, 이런 본격파 포노앰프를 만나면 개인적으로 반갑기만 하다. 상급기인 R35이 건드릴 수 있는 것도 많고 SN비 관련 스펙도 높지만, 두 제품 모두 포노앰프에 대한 제작사의 진지한 고민과 나름의 합리적인 솔루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재생 사운드에 그대로 반영됐다.
프라이메어와 포노앰프
1985년에 설립된 프라이메어의 포노앰프 이야기는 2002년에 출시된 R20에서 시작된다. 이미 1992년에 200시리즈 CD플레이어를 출시하고, 2017년에는 프리즈마(Prisma)라는 자체 제작 네트워크 모듈을 탄생시킨 프라이메어이지만, LP 재생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하프 사이즈의 R20은 RCA 입출력 단자 1조씩을 갖춘 MM/MC 포노앰프다. 후면의 로터리 다이얼로 입력 임피던스(10옴, 20옴, 50옴, 100옴, 200옴, 47k옴)를 조절할 수 있는 점이 특징. 게인은 MC가 54dB로 고정됐지만, MM은 내부 점퍼핀을 통해 35.5dB와 41.5dB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SNR은 -80dB(MM), -75dB(MC). 토로이달 트랜스는 쉴딩케이스에 수납됐다.
2011년에는 풀사이즈의 R32가 나왔다. 입출력 단자는 R20과 마찬가지로 RCA 1조씩만 갖췄지만 좌우 채널의 입력 임피던스를 각각 조절할 수 있도록 했고, 임피던스값도 500옴이 추가됐다. 게인은 R20에 비해 늘어났는데, MC가 62dB로 고정됐고, MM은 내부 점퍼핀을 통해 41.5dB와 46.5dB 중에서 고를 수 있다. SNR은 -87.2dB(MM), -67.6dB(MC). R코어 전원트랜스를 선택한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2020년에 이번 시청기인 R35와 R15가 나왔다. R35는 풀사이즈(가로폭 430mm)의 플래그십 포노앰프이고, R15는 기존 15 시리즈 인티앰프와 깔맞춤이 가능한 쓰리쿼터 사이즈(가로폭 350mm)의 포노앰프다. R15의 경우 덩치는 R32에 비해 작지만 임피던스는 물론 커패시턴스, 심지어 MC 게인까지 조절할 수 있는 점이 거의 파격에 가깝다.
R35 : 풀사이즈 포노, 41개 세팅값, RCA/XLR 출력
R35는 MM/MC 포노에 대응하는 RIAA 전용 포노앰프다. 무엇보다 MC 입력신호에 대한 1차 증폭을 그 흔한 승압 트랜스가 아닌, 헤드앰프(head amp)가 담당하는 점이 솔깃하다. 노이즈 관리만 잘 이뤄진다면 헤드앰프가 승압 트랜스에 비해 음의 찌그러짐 현상, 즉 왜율이 적기 때문이다.
외관부터 본다. 전면 패널에는 진공관 심볼을 닮은 회사 로고 문양이 있는데 이게 전원 온오프 버튼이다. 대단한 센스다. 후면에는 왼쪽부터 좌우채널 임피던스 조절 딥스위치와 RCA 입력단자 1조, RCA/XLR 아날로그 출력단자 1조, 서브소닉 필터 온오프 토글 스위치, MM/MC 선택 토글 스위치, MM/MC 게인 선택 토글 스위치가 마련됐다.
R35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다양한 세팅값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과, 전작 R32나 동생 모델 R15와는 달리 XLR 출력을 지원하는 점이다. R35가 총 41개, R15가 총 18개 세팅을 설정할 수 있는데 비해 R32는 10개에 그쳤다. 이밖에 12Hz 이하 초저역 소리를 반(-3dB)으로 줄일 수 있는 서브소닉 필터를 마련한 점도 눈길을 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부하 임피던스다. MC 부하 임피던스는 10옴부터 47k옴까지 총 21개 스텝으로 조절할 수 있고, MM 부하 임피던스도 표준이라 할 47k옴 외에 2.5k옴을 선택할 수 있다. 부하 커패시턴스는 MM이 100pF, 200pF, 300pF, 400pF, MC가 100pF, 1nF 선택지를 마련했다. 이들은 딥스위치 조합으로 이뤄지는 만큼 매뉴얼에 따라 원하는 값을 설정하면 된다.
게인은 총 12가지 세팅값이 있다. MM이냐 MC냐, RCA 출력이냐, XLR 출력이냐에 따라 토글 스위치를 원하는 방향에 놓으면 된다. MM RCA는 36, 40, 44dB, MM XLR은 42, 46, 50dB, MC RCA는 62, 66, 70dB, MC XLR은 68, 72, 76dB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R32에 비해 게인 선택 범위가 늘어난 것은 물론 전반적으로 게인값이 높아졌다.
스펙을 보면 RIAA 정확도는 +/-0.2dB, SNR은 -85dB(MM, 5mV, A-weighted)와 -76dB(MC, 0.5mV, A-weighted)를 보인다. R32와 비교하면 특히 MC 카트리지 신호입력시 SN비가 좋아졌다. 채널분리도는 MM이 80dB, MC가 77dB, THD+N은 MM이 0.02% 이하, MC가 0.03% 이하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MC 스펙이 MM에 밀리는 것은 MC 신호의 음압레벨이 MM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그쳐 그 만큼 증폭을 더 세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내부를 보면 전면 왼쪽에 뮤메탈로 쉴딩한 토로이달 전원트랜스, 그 뒤에 평활 및 정류단이 있고 가운데 기판에는 정전압 기판이 자리잡고 있다. 후면 입력단자 쪽에는 MC 신호 1차 증폭 회로, 그 앞에는 MM 신호 및 MC 신호 2차 증폭, 그리고 RIAA 보정 회로가 투입됐다. MC 1차 증폭에는 FET 소자를 쓴 디스크리트 헤드앰프, MM 및 MC 2차 증폭에는 OP앰프를 쓴다.
R15 : 쓰리쿼터 사이즈 포노, 18개 세팅값, RCA 출력
R15 역시 외관 디자인과 세팅 메커니즘, 내부 설계는 R35와 유사하다. 섀시 사이즈가 쓰리쿼터로 작고, 세팅 선택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이 가격대 포노앰프에 비하면 과분할 정도로 넉넉한 편이다. 게인을 총 4가지, 부하 임피던스를 8가지, 부하 커패시턴스를 6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서브소닉 필터도 마련됐다.
후면을 보면, 왼쪽부터 좌우채널 임피던스 조절 딥스위치와 RCA 입력단자 1조, RCA 아날로그 출력단자 1조, 서브소닉 필터 온오프 토글 스위치, MM/MC 선택 토글 스위치, MM/MC 게인 선택 토글 스위치 등이 마련됐다. R35에 비하면 XLR 출력단자가 없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게인은 MM이 40, 45dB, MC가 60, 65dB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밸런스 출력 회로가 생략된 만큼 확실히 R35에 비해 게인 값이 낮다. 부하 임피던스는 MC가 30~500옴(6스텝), MM이 2.5k옴과 47k옴에서 고를 수 있고, 부하 커패시턴스는 R35와 마찬가지로 MM은 100pF, 200pF, 300pF, 400pF, MC는 100pF, 1nF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한편 R15의 RIAA 정확도는 R35와 동일한 +/-0.2dB, SNR은 R35에 약간 밀리는 -83dB(MM, 5mV, A-weighted)와 -74dB(MC, 0.5mV, A-weighted)를 보인다. 채널분리도는 R35와 MM이 80dB, MC가 77dB, THD+N은 MM이 0.02% 이하, MC가 0.03% 이하로 R35와 동일하다. 무게는 R35가 9.5kg, R15가 6.5kg이 나간다.
포노앰프의 부하 임피던스와 부하 커패시턴스에 대하여
여기서 잠깐. 플래그십 R35도 그렇고 엔트리 모델이라 할 R15도 그렇고 프라이메어는 부하 임피던스와 커패시턴스 값을 왜 이렇게 다양하게 준비했을까. 그리고 포노앰프가 ‘본격파’를 표방하면 왜 이처럼 다양한 세팅값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일단 포노 카트리지와 포노앰프 매칭에는 거의 공식화된 것이 있다. 1) MC 카트리지는 임피던스 매칭만 고려한다, 2) 그리고 그 비율은 내부 임피던스의 5~10배다. 이에 비해 3) MM 카트리지는 부하 커패시턴스 값만 고려하며 그 권장 커패시턴스는 100~300pF이다, 4) MM 카트리지의 권장 부하 임피던스는 대부분 47k옴이다.
사실, 이 정도만 큰 그림을 잡아둬도 포노앰프의 부하 임피던스와 부하 커패시턴스를 설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자신이 쓰고 있는 카트리지의 '추천' 혹은 '권장' 세팅값으로 출발해 직접 들어보면서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왜 위에서 언급한 4가지 ‘공식’이 도출된 것일까. 약간 복잡한 얘기이지만 이론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우선 일반적인 상황이다.
임피던스(Z) = 저항(R) + 리액턴스(X)
리액턴스(X) = 인덕턴스(XL) + 커패시턴스(XC)
임피던스 : 교류 전기를 방해(impede)하는 힘. 따라서 주파수와 상관이 있다
저항 : 직류 전기에 대항(resist)하는 힘. 따라서 주파수와 상관이 없다
※ 인덕턴스 : 전자기 유도(induct) 현상에 의해 코일에서 역기전력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이 교류 전기의 흐름을 방해하는지 알려준다. 긴 코일을 많이 촘촘히 감을수록 인덕턴스 값이 높아진다. 교류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파수와 상관이 있다. 인덕턴스 값이 높으면 고주파가 통과하기 어렵다(로우패스). 반대로 말하면 고주파가 흐르면 인덕턴스 값이 높아진다. 어쨌든 인덕턴스 값이 높으면 그 결과는 고음이 잘 안나온다는 것이다.
※ 커패시턴스 : 커패시터가 전하를 얼마나 많이 붙들어매는지(capacity), 그래서 얼마나 많이 교류 전기의 흐름을 방해하는지 알려준다. 커패시터 안의 양 극판이 넓고 간극이 좁을수록, 유전체의 유전율이 높을수록 커패시턴스 값이 높아진다. 당연히 주파수와 상관이 있다. 커패시턴스 값이 높으면 저주파가 통과하기 어렵다(하이패스). 반대로 말하면 저주파가 흐르면 커패시턴스 값이 높아진다. 어쨌든 커패시턴스 값이 높으면 그 결과는 저음이 잘 안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포노 카트리지 상황이다.
포노 카트리지에는 자석과 코일 밖에 없다. 따라서 포노 카트리지에서 생기는 변수는 내부 임피던스와 내부 저항, 내부 인덕턴스 뿐이다. 코일 사이의 간격에 의해서도 기생 커패시턴스가 생기지만, 내부 인덕턴스 값 자체가 낮은 MC 카트리지에서는 그 영향이 미미하고 이 때문에 부하 커패시턴스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에 비해 내부 인덕턴스 값이 높은 MM 카트리지에서는 기생 커패시턴스 값이 늘어나므로 부하 커패시턴스 설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포노앰프의 부하(loading) 임피던스는 소스기기와 앰프 사이에서 최대치의 ‘전압’ 전송을 위한 임피던스 매칭 관점에서 생각하면 된다. 즉, 받는 쪽(포노앰프)이 주는 쪽(카트리지)보다 무조건 높아야 하고, 통상 그 비율은 5~10배다. 이처럼 부하 임피던스가 높아야 뒷단으로 교류 전기가 수월하게 술술 넘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카트리지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의 출구(내부 임피던스)가 상대방의 입구(부하 임피던스)에 비해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것이기 때문이다.
포노앰프의 부하(loading) 커패시턴스는 이러한 매칭 개념이 아니고, 카트리지의 주파수응답특성, 특히 중고역의 주파수응답특성을 좋게 하기 위한 보정 개념이다. 즉, 톤암 와이어와 포노케이블의 커패시턴스, 그리고 포노앰프의 입력 커패시턴스를 모두 '로딩'했을 때 카트리지가 얼마나 평탄한 주파수응답특성을 보이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MM 카트리지의 부하 커패시턴스 설정이 주로 고음과 관련해 청감상 차이를 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MM 카트리지의 부하 커패시턴스가 너무 높으면 고음이 튀고 치찰음이 들리며, 반대로 너무 낮으면 고음이 갑갑하고 해상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요약컨대, 포노 카트리지 입장에서는 얇은 코일을, 많이, 그리고 촘촘히 감을수록 내부 임피던스 값이 높아진다. MC 카트리지는 코일을 적게 감을 수밖에 없으므로 저항과 인덕턴스 값이 낮고 이에 따라 내부 임피던스 값이 낮다(부하 임피던스 값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비해 MM 카트리지는 코일을 많이 감으므로 저항과 인덕턴스 값이 모두 높고 이에 따라 내부 임피던스 값이 높다(부하 임피던스도 높아서 47k옴이나 된다).
세팅 및 시청
R35와 R15를 필자의 시청실로 가져왔다. 친숙한 환경에서 좀 더 오래 들어보기 위해서다. 시청에는 어쿠스틱 솔리드의 클래식 우드 턴테이블, 올닉의 블랙 MC 카트리지, 패스 프리앰프 XP-12, 일렉트로콤파니에 파워앰프 AW250R을 동원했다. 스피커는 드보어피델리티의 오랑우탄 O/96.
블랙 MC 카트리지는 출력 0.3mV, 내부 임피던스 18옴, 권장 부하 임피던스는 100옴으로 돼 있다. R35는 게인 62dB(RCA 출력), 부하 임피던스 100옴, 부하 커패시턴스 100pF, R15는 게인 60dB(RCA 출력), 부하 임피던스 100옴, 부하 커패시턴스 100pF로 설정했다. 두 기기 모두 서브소닉 필터를 적용했다.
Madeleine Peyroux ‘Take These Chains From My Heart’(Blue Room)
먼저 R35로 들었다. 룬(Roon)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듣던 때에 비해 음이 보다 묵직하고 바닥에 잘 깔리는 점이 확연하다. 무대를 보다 넓게 쓰고 입자감도 많이 고와졌다. 무엇보다 따사로운 봄날의 햇볕을 받는 것 같은 온기감이 대단하다. 필자의 심장을 눌러오는 다이내믹스도 기대 이상인 상황. 전체적으로 헤드앰프, OP 앰프, RIAA EQ 회로의 3각 편대가 잘 편성된 느낌이다. 보컬이 바로 앞에서 조용하게 그리고 힘을 빼고 부르는 듯한 임장감 역시 기막히다.
이어 R15로 바꿔 들었다. 진공관에 비유하면 3극관을 푸시풀로 구동하다가 싱글로 바꾼 느낌. 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차분하고 촉촉하게 노래를 한다. 하지만 R35에 비하면 기세와 에너지를 많이 양보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상대적으로 순하고 얌전한 재생음이다. 그럼에도 노이즈가 사라진 적막한 배경에서 해상력 가득하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포노앰프라는 것은 분명하다. 음의 심지가 튼실하고 단단한 것은 아무래도 R35이다.
Ernest Ansermet,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 Covent Garden (The Royal Ballet Gala Performance LP) - Tarantella from La Boutique Fantasque
R35로 들어보면, 음들이 예리하게 슬라이스되어 스피커에서 빠져나온다. 순간적으로 음들을 빵 치고 나가는 동작 역시 재빠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맨리의 스틸헤드 RC 같은 웰메이드 진공관 앰프에 비하면 재생음에서 약간 메마른 구석이 있다. 가격 차이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에너지는 아날로그 재생 고유의 특권이라 할 만하다. R15에서는 음이 약간 거칠어진 점만 빼놓고는 거의 엇비슷한 음과 무대가 펼쳐졌다. 각 악기들을 무대 곳곳에 뿌려두는 솜씨, 산뜻하고 경쾌한 스텝, 화려한 색채감, 이런 것들이 프라이메어 포노앰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Ernest Ansermet,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 Covent Garden (The Royal Ballet Gala Performance LP) - Andante mosso from La Boutique Fantasque
R35로 들어보면, 플루트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음이 돋보인다. 피아니시모에서 여린 음에 대한 표현력을 보면 R35가 아날로그 포노앰프로서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체감상 SN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음을 아주 오래 끌고 간다. 이어 R15로 들어보면, 상대적으로 폭신폭신한 안락감이 덜하지만 깨끗한 배경에서 여린 음을 만끽할 수 있는 점은 매한가지다.
Ernest Ansermet, Orchestra of The Royal Opera House & Covent Garden (The Royal Ballet Gala Performance LP) - Can Can from La Boutique Fantasque
R35에서는 정말 초스피드의 음이 전개되는데도 멍청해지거나 혼탁해지는 경향이 전혀 없다. 중심을 확 틀어잡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느낌. 다이내믹 레인지는 그야말로 천변만변 수준. 정신이 번쩍 날 정도다. 오케스트라의 앞뒤 거리감이나 무대의 공간감도 잘 살아났다. R15에서는 음의 기세가 한 풀 꺾였지만 경쾌한 스텝이나 음의 어두운 그늘이 없는 점은 오히려 R35보다 낫다. 게인이 높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Bill Evans ‘Nardis’(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이 곡은 스트리밍 음원으로 들었을 때도 좋았다. 특히 드럼 연주의 디테일과 다이내믹스가 압권. 이어 R35를 비롯해 아날로그 45회전 시스템으로 바꾸니, 아까는 주목하지 못했던 피아노가 전면에 나선다. 스트리밍 때에 비해 확실히 맑고 선명하며 해상력이 높은 음이다. 베이스 현을 튕겨내는 사실감도 스트리밍 음원과는 비교가 안된다. 드럼 솔로 대목의 파괴적인 에너지감도 대폭 늘었다.
이어 R15로 바꿔 들어보면, 무대가 상대적으로 미니어처로 바뀌지만 음이 더 맑고 무대 앞이 투명해진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지만 게인에서 살짝 밀릴 뿐 소릿결이나 해상도는 거의 차이가 없다. 체감상 SN비 역시 기대 이상으로 높다. 악기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다 보이는 듯했던 R35까지는 아니지만 가성비가 높은 탐나는 포노앰프임에는 분명하다. 이 가격대 일부 포노앰프에서 보이는 색번짐이나 굼뜸, 원기 부족, 이런 것이 없어서 좋았다.
총평
프라이메어 R35, R15 포노앰프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조용함'과 ‘깨끗함'이었다. 특히 SN비가 이 가격대 포노앰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는데, R35의 경우 서울 도심에서만 지내다가 시골로 내려가 밤길을 걷는 듯했다. 모든 잡소리가 사라진 그 적막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덕분에 예를 들어 빌 에반스 곡에서는 베이스가 마치 혼령처럼 스윽 나타나 섬뜩하기도 했다.
정리해본다. R35는 게인과 부하 임피던스, 부하 커패시턴스를 무려 41가지 세팅값이 마련된 본격파 MM/MC 포노앰프다. MC 입력에 대한 부하 임피던스 값만 21가지다. MC 1차 증폭에 그 흔한 승압트랜스 대신 액티브 헤드앰프를 써서 음의 왜곡을 최소화한 점이 돋보인다. R15는 세팅값이 18개로 줄어들지만 이 역시 이 가격대에서는 과분한 선택지이며, 소릿결은 약간 줄어든 에너지감을 제외하면 R35와 유사했다. 무엇보다 노이즈 프리인 상태에서 LP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점이 이번 R35, R15 포노앰프의 가장 큰 매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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