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on Research | 이런 KT88 앰프가 또 있을까 퍼포먼스 25주년 기념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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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슨리서치(Unison Research) 퍼포먼스(Performance) 25주년 기념모델
이런 KT88 앰프가 또 있을까
이탈리아 유니슨 리서치(Unison Research)의 대표 베스트셀러는 지금은 단종된 심플리 투(Simply Two)다. 1995년에 처음 출시된 이후 2012년 애니버서리 모델까지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내부저항이 높은 5극관 EL34를 싱글 구동한다는 파격적인 발상과 독보적인 따뜻한 음색, 원목과 스테인레스 스틸을 조합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필자 역시 심플리 투 애니버서리 모델을 과거 1년 넘게 쓰면서 행복한 오디오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유니슨 리서치의 진공관 인티앰프는 2가지 라인이 존재한다. 5극관 EL34를 쓰는 라인과 4극 빔관 KT88을 쓰는 라인이다. 유니슨 리서치에서는 EL34 앰프 라인을 따뜻한 사운드(warm sound), KT88 앰프 라인을 다이내믹 사운드(dynamic sound)로 구분하고 있다. 어쨌든 EL34 계열의 경우, 심플리 이탤리(싱글/클래스A), S6(3병렬 싱글/클래스A), 트라이오드 25(푸시풀/클래스AB)가 있다.
KT88 계열에는 KT88을 채널당 1개를 써서 싱글 구동하는 14W 프렐루디오(Preludio), 채널당 2개를 병렬로 써서 싱글 구동하는 25W 신포니아(Sinfonia), 그리고 채널당 3개를 병렬로 써서 싱글 구동하는 45W 퍼포먼스(Performance)가 있다. 세 모델 모두 출력관 개수에 상관없이 모든 진공관이 계속해서 ‘일’을 하는 싱글 구동인 만큼 클래스A 증폭을 한다. 언제나 바이어스 전압을 세게 걸어준다는 뜻이다.
이번 시청기는 퍼포먼스 애니버서리(Performance Anniversary)다. 1987년 설립된 유니슨 리서치가 2012년 설립 2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 모델들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 퍼포먼스 애니버서리다. 필자가 썼던 심플리 투 애니버서리 역시 이 때 나왔다. 현행 트라이오드 25는 유니슨 리서치 최초의 인티앰프인 트라이오드 20(Triode 20)의 후계기로 이 해 탄생했다.
퍼포먼스 애니버서리 팩트 체크
우선 팩트부터 챙겨보자. 원래 유니슨 리서치에는 1990년대 초에 발매됐던 오리지널 퍼포먼스 모델이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EL34를 채널당 2개씩 병렬 싱글 구동해 24W를 내는 클래스A 인티앰프였다. 이에 비해 당시 트라이오드 20은 채널당 EL34 2개를 푸시풀로 구동하는 클래스AB 인티앰프였다.
그러다 2006년, ‘병렬 싱글(파라싱글) 구동/클래스A 증폭’의 향수를 잊지 못한 각국 수입사들의 요청으로 퍼포먼스 모델이 부활했다. 이번에는 KT88을 채널당 3개씩 써서 40W를 냈다. ‘병렬 싱글/클래스A’ 컨셉트는 이어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퍼포먼스 모델로 재탄생한 셈이다. 양 사이드에 방열판이 붙은 것, 진공관과 원목 섀시 사이에 스테인레스 스틸 플레이트가 투입된 것도 이 2세대 퍼포먼스 때부터다.
퍼포먼스 애니버서리는 일종의 한정판이다. ‘애니버서리’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업그레이드 손길이 베풀어졌다. 외모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판 플레이트의 재질이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브론즈(청동)로 바뀌었다는 것. 플레이트는 진공관의 뜨거운 열과 마이크로포닉 노이즈로부터 원목 섀시와 내부 회로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작지 않다.
소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진공관과 출력 트랜스도 업그레이드됐다. 출력관(KT88)과 전압증폭관(12AX7), 드라이브관(12AU7) 모두 골드 라이온(Gold Lion) 프리미엄 복각 진공관으로 바뀌었다. 1957년에 나온 오리지널 골드 라이온 KT88은 ‘출력관의 제왕’(King of Power Tubes)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뛰어난 음질을 선사한 명관이다.
퍼포먼스 애니버서리 집중탐구
처음 접한 퍼포먼스 애니버서리는 그 큼지막한 덩치와 와인빛이 도는 브론즈 플레이트, 여기에 총 10개의 크고 작은 진공관이 어울려 독특한 아우라를 뽐냈다. 하여간 유니슨 리서치는 원목과 메탈과 진공관을 배합하는 데는 도가 튼 제작사다. 전면 패널에 붙은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의 노브 돌리는 맛도 기막히다.
섀시는 좌우 길이가 60cm에 이를 정도로 보통의 풀사이즈 앰프보다 넓다. 높이는 23.5cm, 안길이는 48cm, 무게는 50kg. 전면에는 입력선택 노브와 볼륨 노브, 리모컨 센서 등이 장착됐는데, 볼륨은 일본 알프스(ALPS)의 RK27 전동볼륨을 쓰고 있다. 묵직한 리모컨도 기본 제공된다. 후면을 보면 4조의 라인 입력단과 1개의 테이프 입력단을 갖췄으며 모두 RCA 단자다. 바이와이어링을 지원하는 스피커 커넥터는 4옴과 8옴 스피커를 선택해서 연결할 수 있다.
상판을 보면 퍼포먼스 애니버서리의 또다른 특징을 알 수 있다. 좌우채널이 완벽히 대칭 형태를 갖춘 것이다. 이는 진공관 뿐만 아니라 상판에 노출된 전원트랜스(안쪽 2개)와 출력트랜스(바깥쪽), 파워 커패시터가 모두 그러하다. 내부 PCB 설계도 듀얼 모노 형태를 취했다. 좌우채널의 편차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스테레오 재생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이는 격하게 환영할 만하다.
이제 차분히 설계 디자인을 음미해보자. 퍼포먼스 애니버서리는 기본적으로 빔관 KT88 3개를 병렬(parallel) 연결해 한꺼번에 싱글 구동하는(single-ended) 클래스A 앰프다. 출력은 40W. 싱글 구동은 푸시풀과 달리 출력트랜스를 포화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도의 제작기술이 필요한데 유니슨 리서치는 직접 코일을 감아 출력트랜스를 만들고 있다. 진공관 앰프의 대역폭(bandwidth)도 사실상 이 출력트랜스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4극 빔관인 KT88을 3결 접속의 하나인 울트라리니어(Ultralinear) 모드로 쓴다는 것. 잘 아시는 대로 3극 접속(triode)은 4극 빔관이나 5극관의 내부 전극을 3개만 이용, 사실상 3극관처럼 활용하는 출력관 결속 방법이다. 흔히 트라이오드 모드를 선택할 때 출력은 줄어들지만 소릿결이 나긋나긋해지고 섬세해지는 것은 빔관이나 5극관의 높은 내부저항이 3극관처럼 낮아진 이유가 가장 크다.
울트라리니어 모드는 3극 접속의 하나이지만 차이가 있다. 3극 접속은 스크린 그리드(빔관, 5극관)를 플레이트에, 서프레스 그리드(5극관)를 캐소드에 접속시킨다. 이에 비해 울트라리니어 접속은 스크린 그리드와 플레이트를 연결할 때 출력트랜스의 1차 코일을 거치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출력트랜스의 승압 효과를 볼 수 있어서 3극 접속에 비해 보다 많은 출력을 뽑아낼 수 있다. 빔관이나 5극관의 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3극관의 왜곡 없는 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울트라 리니어’다.
시청
퍼포먼스 애니버서리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마이트너의 인티그레이티드 DAC MA3와 스피커로 파인오디오의 F704를 동원했다. 12인치 동축 유닛과 12인치 우퍼 구성의 F704는 공칭 임피던스 8옴에 96dB라는 높은 감도를 자랑한다. 음원은 룬으로 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처음 등장한 바리톤이 잔뜩 배에 힘을 줘 노래를 부르는다는 인상. KT88 3병렬 싱글의 힘이다. 그런데 메조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의외로 매끄럽고 곱다. 배음과 소프트한 감촉은 진공관 앰프의 전매특허라고 해도 평소 KT88에 대해 가졌던 ‘투박한’ 느낌이 거의 없다. 자리에 일어나 ‘진짜 KT88 맞나?’ 확인했을 정도다.
이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짐작된다. 첫째, KT88을 울트라리니어 모드로 결속해 거의 3극관 소리를 내게 한 덕분이다. 둘째, 3개의 출력관이 모두 클래스A로 증폭된 효과다. 빔관은 통상 내부저항을 낮추기 위해 푸시풀 구동, 클래스AB 증폭을 하지만, 퍼포먼스 애니버서리는 보란듯이 KT88을 싱글 구동, 클래스A 증폭을 하고 있다. 셋째, 골드 라이언 복각 진공관의 힘이다.
이러한 고운 소릿결은 셀린 디온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Tell Him’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선명하고 색번짐이 없는 윤곽선, 두 디바의 서로 다른 입 위치(왼쪽의 셀린 디온이 조금 더 높다)가 확연하다.
반주음이 잘 들리는 것도 특징인데 이는 그만큼 현재 시스템이 보다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주고 있다는 증거다. 스팅의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를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재생음이 힘이 넘쳐나면서도 깨끗한 점이 눈에 띈다. 과연 유니슨 리서치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그것도 골드 라이온 선별관을 쓴 애니버서리 모델답다.
무대는 홀로그래픽하게 펼쳐지고, 각 악기 이미지는 정확하게 맺힌다. 이는 동축 유닛을 쓴 스피커 덕분이기도 하지만 역시 쌍3극관을 전압증폭단에 투입한 결과로 보는 게 옳다. 현 시스템에서 입력된 음악신호를 증폭하는 유일한 곳이 12AX7이기 때문이다.
맞다. 증폭은 결국 리니어리티(linearity)가 관건이고 이 리니어리티 측면에서 3극관은 빔관이나 5극관, 그리고 트랜지스터에 비해 언제나 옳다. 나오는 음들이 저마다 싱싱하고 구획정리가 잘 돼 있는 것도 진공관 12AX7의 힘이다. 빌 에반스 트리오가 연주한 ‘Autumn Leaves’에서는 뒤로 쑥 들어간 드럼 하이햇의 거리감에 현기증이 났다.
SN비가 무척 높은 재생음이다. 감도가 96dB나 되는 스피커로 듣는데도 노이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배경이 그냥 까만 색이다. 이러다 일거에 음들이 쏟아지는 순간에도 혼란스러움, 이런 게 없다. 한 음 한 음을 분명히 내주는 앰프다. 피아니시모 파트에서도 음의 형상이나 무대의 정숙도가 무너지지 않는다. 마이클 스턴이 칸자스 시티 심포니를 지휘한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결이 생생하다.
KT88이 이처럼 선명하고 투명하며 고왔던 적이 있나 싶다. 앙세르메가 로얄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타란텔라’에서는 음들이 스피커에서 미끈하게 빠져나오는 모습에 크게 감탄했다. 참으로 빠르고 투명한 음이었다.
총평
유니슨 리서치와 진공관 앰프, 그리고 KT88, 12AX7, 골드 라이온, 울트라리니어, 클래스A 등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청이었다. KT88 3개를 병렬 싱글 구동하면 이 정도로 차분하고 매끄러운 음이 나오는 것을 거의 처음 깨달았다.
골드 라이온 프리미엄 진공관의 저력, 진공관 앰프에서 출력트랜스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앰프를 너무 공학적으로만 접근한 것 같지만, 사실 필자의 가슴은 계속해서 이 앰프의 심미적 아름다움에 매료돼 있었다. 단언컨대, 퍼포먼스 애니버서리 같은 KT88 앰프는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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